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터 모델 (문단 편집) ===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 발터 모델의 부하들은 ‘모델 사령관은 자신의 롤 모델인 [[프리드리히 대왕]]과 생일이 같다’는 식으로 상관의 이름을 롤 모델이나 리모델로 즐겨 활용했는데 당사자인 모델 스스로도 이러한 유행어나 농담에 재밌어 하며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야심차게 사용하기도 했다.[* 《Generalfeldmarschall Walter Model (1891–1945) Dokumentation eines Soldatenlebens》 Hansgeorg Model, Dermot Bradley, 1991] 기회가 될 때마다 모델은 아내와 통화했고, 세 자녀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 받았다. 전간기에 모델은 가족들과 정치, 군사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않았고[* 모델의 집을 방문하는 동료 군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으로,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군사 업무에 관한 대화가 일절 금지되었다. 《Generalfeldmarschall Walter Model. Von Genthin bis vor Moskaus Tore》 Konrad Leppa, 1962, P.60],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제2차 세계대전의 한 가운데에서도 모델의 편지엔 전투에 대한 내용은 찾기 힘들다. 그 대신 평상시였다면 아빠[* 편지 본문이나 보내는 사람에 '[[아버지|Vater]]'가 아닌 '''[[아빠|Vati]]'''라고 적었다.]가 직접 10대 자녀들을 마주보며 대화했을 내용 -《성경》 구절, 루터의 격언, 쉽게 풀어놓는 루터교 교리- 을 편지로 쓰는 모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일례로 1941년 10월 27일자 편지에서 모델은 아들에게 50번째 엽서를 받은 기념일이라 자축하며, 전날 [[페도어 폰 보크|폰 보크]] 원수와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라인하르트]] 장군과의 반가웠던 만남을 언급한 뒤 우편번호가 새롭게 __30957__로 바뀌었다고 밑줄까지 그어가며 강조했다. 이는 모델이 기갑대장으로 진급하고, 사단장에서 41기갑군단장으로 영전하며 소속 사령부가 바뀌었으니 주소 또한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중부집단군 사령부에서 폰 보크와 라인하르트를 만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런데 편지 어디에도 진급과 영전에 대한 내용이 없다.[* 《Generalfeldmarschall Walter Model (1891–1945) Dokumentation eines Soldatenlebens》 Hansgeorg Model, Dermot Bradley, 1991] 1941년 11월 20일자 편지에선 >“우린 여기서 오랫동안 동계 스포츠를 즐기게 될 것 같구나.” 라고 유쾌하게 적었는데, 같은 중부집단군 소속 장성들이 준비되지 않은 동계 전투의 고충을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나마 사실적으로 털어놓았던 내용과 매우 대조적이다. 당시에 이미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한스게오르크는 편지 덕분에 평소의 아버지가 최전선과 사령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잘 알 수 있었지만, 군 지휘관으로서 모델의 전투에 대해선 알 수 없었는데 그게 아버지가 바라는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고 했다.[* 《Generalfeldmarschall Walter Model Legende und Wirklichkeit》 Marcel Stein, 2001, P.21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